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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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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왕족과 일반 백성들의 교육 시설과 교육 방법을 자세히 살펴봅니다.

    1. 삼국시대(고구려, 백제, 신라) 아동 교육

    삼국시대 왕족의 교육을 살펴보면 고구려 대표 기관으로 태학이 있고, 백제의 오경박사, 신라시대 국학과 화랑도가 있습니다 고구려 - 태학(太學)은  372년 소수림왕 때 설립된 교육기관으로, 왕족과 귀족 자제들이 유교 경전, 역사, 정치 철학을 배웠습니다. 백제 - 오경박사(五經博士), 의박사(醫博士)는 왕족과 귀족 자제들에게 유교 경전과 의학을 가르쳤습니다. 신라 - 국학(國學) 682년 신문왕 때 설립된 국가 교육기관으로, 왕족과 귀족 자녀들이 유교 경전을 학습했습니다. 화랑도 교육은 신라의 귀족 자제들은 화랑도에서 심신 수련, 무예, 충성심, 예절 등을 익혔습니다.

    삼국시대 서민 및 백성의 교육의 특징으로  서민 계층은 공식적인 교육 기관이 없어 가정에서 부모가 직접 교육하거나, 민간에서 한자를 가르치는 서당(私塾) 형태의 교육이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농업 기술이나 생업에 필요한 실용적인 지식은 주로 부모나 마을 공동체에서 배우는 형태였습니다.

    2. 통일신라 시대 아동 교육

    통일신라 시대  왕족과 귀족의 교육기관은 국학과 독서삼품과가 있습니다. 국학(國學)은 신라 신문왕(682년)이 설립한 교육기관으로, 왕족 및 귀족 자녀들에게 유교 경전과 정치 철학을 교육했습니다. 그리고 독서삼품과(讀書三品科)는 788년 원성왕이 시행한 관리 선발 시험으로, 유학 교육을 받은 자만이 관직에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서민 및 백성의 교육 여전히 공식적인 교육 기관이 없어, 가정 교육과 스승을 찾아 배우는 방식이 주를 이뤘습니다. 일부 사찰에서는 불교 경전을 가르쳤으며, 서민 자제들도 불교 교육을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3. 고려시대 아동 교육

     고려시대 왕족과 귀족의 교육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국자감(國子監)은 고려의 최고 교육기관으로, 왕족과 귀족 자녀들이 유학과 정치학을 배웠습니다. 사학(四學)은 국자감 외에도 개경에는 4개의 교육기관이 설치되어, 귀족 자제들이 학문을 익혔습니다. 과거제 시행은 학문을 배운 사람들은 과거 시험을 통해 관직에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려시대 서민 및 백성의 교육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향교(鄕校)는 지방의 교육기관으로, 중류층 이상이 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서당(書堂)은 마을 단위에서 운영되며, 서민 자제들도 한자를 배우고 기본적인 유학 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백성은 교육 기회가 제한되었으며, 실생활과 관련된 기술을 가정과 공동체에서 배웠습니다.

    4. 조선시대 아동 교육

    왕족과 양반 계층의 교육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성균관(成均館)은 조선의 최고 교육기관으로, 유학과 정치학을 가르쳤으며 주로 양반과 왕족들이 입학했습니다. 사학(四學)은  한성(서울)에 설치된 4개의 교육기관으로, 중급 교육을 담당했습니다. 서원(書院)은 지방에서 운영된 교육기관으로,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을 목표로 했습니다. 서민 및 백성의 교육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서당(書堂)은 마을 단위로 운영되었으며, 양반 자녀뿐만 아니라 평민 자녀도 입학 가능했습니다. 향교(鄕校): 지방에서 운영된 공립 교육기관으로, 주로 중인 계층 이상의 자녀들이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여성 교육은 양반 여성들은 규훈(閨訓)이라는 가정 내 교육을 받았으며, 가정에서 예절과 기본적인 한문을 익혔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백성(농민, 천민)은 교육을 받을 기회가 거의 없었으며, 실용적인 기술을 배우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5. 결론

    한국의 역사 속에서 왕족과 귀족 자녀들은 체계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었지만, 서민과 백성들은 교육 기회가 제한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선 후기로 갈수록 서당이 발달하면서 서민들도 한자를 배우고 교육을 받을 기회가 늘어났습니다. 교육은 신분에 따라 차별이 컸지만, 점차 시대가 흐르면서 왕족에서 서민으로  확대되어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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